개척사
1. 하나님은 모래벌판을 옥토로 만드시면서 교회를 세우셨다.
광덕의 옛 이름은 저우리였다. 메말라 사막과도 같은 모래땅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홍수가 나서 폐농하고 비가 오래 안 오면 가물어서 못 견디니 저울에 달 듯이 정확하게 적당하게 비가 와주어야 잡곡 농사라도 해서 연명한다는 뜻이었다 한다.하회는 유교적인 전통이 이름난 곳이었으나, 복음이 1910년에 들어와서 일부 핍박은 있었으나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광덕은 1952년까지도 불교 신자들 외에 성덕도, 흠치교, 무속이 성행했었다.1952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강남 양수장이 설치되어 모래벌판이 수리 안전답으로 바뀌면서 물질적인 부요와 함께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다. 주길창 공사감독 부인 옥씨는 간호사 출신으로 의료시설이 없든 시골에 와서 환자들을 실비로 정성껏 봉사하면서 복음을 전도했고, 그 남편 주길창씨에게 (당시에는 불신자였으나 그 후에 장로님으로 광덕교회에 찾아온 적이 있다.) 예배당을 지어줄 것을 권유했고, 30평정도의 교회가 건축되었고, 공사가 끝나고 그들이 떠나기까지 교회는 은혜롭게 성장하였다.
2. 마을에서는 교회를 팔아서 개인의 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고 난후 신앙적으로 이제 겨우 자라는 단계에 있던 청년들 특히 윤중협은 이북에서 월남출신이고 똑똑했기에 텃세에 견디기 어려웠고 객지로 떠나고 마을에 중학교를 선교사 반피득씨가 인수하여 신망중학교로 바뀌면서 신인순 전도사님이 성경교사로 엄동수집에 머무르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으니 최초의 교역자였다. 신전도사님이 떠난 후 남은 몇몇 교인들은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교회가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노회에서 교회 종은 도양교회로 보내고 건물은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개인에게 매도하여 가정집이 되어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다.
3.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개척조건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은 다른 방법으로 광덕에 교회를 다시 개척하였다. 이상농촌 꿈을 가졌던 김영준이 경북도에서 면단위로 하나씩 추진하는 표준농장으로 선정됨에 하회교회에서 부용대 뒤편 개간지에 정착 하였고, 안동동부교회 출신 김경한 교장은 신망중학교를 인수하여 광덕에 오게되어 학교복음화를 힘쓰던 김경한 교장과, 광덕에 교회를 개척하자는 김영준이 뜻을 모았다. 학교에는 기독교인 교사가 많이 들어왔다. 김국진선생, 박승국서무, 김은도선생, 장선생 부인, 백만자씨등이 있었고 기왕에 교회에 다니던 이들도 몇 명 있어서 개척하기에 조건이 좋았다.
4. 개척의 시발점 노래자랑대회
우선적으로 유년주일학교부터 시작하여야겠기에 의논된 것이 학생 노래자랑 대회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백옥 선집사가 광덕국민학교 교사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가 하나님이 예비한 것이었고 그것은 대단한 인기였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주일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5. 개척예배는 신망중학교 창고 교실에서
1969년 10월 5일 첫 예배를 신망 중학교 창고를 개조한 교실에서 박승팔 목사님을 모시고 12명이 모여서 첫 예배를 드렸으나 교역자도 없고 학교 교실은 공공건물인지라 밤에는 이용할 수 없어서 저녁예배, 수요 기도회는 김영준 집에서 모여서 김영준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6. 첫 교역자 유지순 전도사님
1971년 유지순 전도사님을 첫 교역자로 모셨다 유전도사님은 전도에 열심히 대단하여서 어느 집이 든지 들어가면 뿌리를 빼는 복음의 열정이 대단한 전도사님이었다. 풍남국민학교 광덕 분교장 초가집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
7. 노후교실 한칸이  처음 예배당
1972년 6월 13일 풍남국민학교 광덕분교 노후 교실 한칸(64.8㎡)을 79,300원에 안동교육청으로부터 불하 받아서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케 되었다. 그러나 토지 소유자는 류달우씨였다. 
8. 교회증축
당시 건물은 원래 사용 목적이 학교 교실이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구별해서 장차 건축토록 하고 현 건물은 차후 교육관으로 쓸 수 있게 30평(계 50평)을 증축 하였다. 
9. 학교 지을땅을 교회지을 땅으로 하나님은 바꾸셨다.


현재 우리 교회 대지는 본래 국민학교를 건축하기 위하여 교육청에서 교실 한 칸을 건축하고 마을에서 임시 교실 3칸을 건축하여 분교장으로 사용하든 곳인데 본교로 인가가 난후에 지주가 과도한 토지 가격을 고집함으로 오랜 시간을 끌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학교 부지가 옮겨져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모래땅으로 남아 있었으니, 우리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것이었다. 우리는 여리고 작전으로 매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온 교인이 대지 주위를 한 바퀴씩 돌기를 계속했다 땅 주인의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까지... 그토록 고집하던 땅 주인을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1990년 6월1일 교회에서 평당 8,700원에 2000평을 구입하게 되었다 
10. 가당치도 않는 수련회관 운영
광덕은 하회에 인접해 있고 교회 위치가 솔숲과 강에 인접해 있어서 수련회를 오기를 희망하는 교회가 많았었다. 그래서 교회 건물만으로는 부족해서 1980년에 축사로 건축했다가 축산을 포기한 건물을 교회에서 일시불로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250만 원 적금을 넣어 주고 인수하여 수련장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일부 교인들은 우리 교회 자체도 적자예산으로 어려운 형편에 도시에 다른 교회를 위하여 수련장을 운영하는 것은 당치 않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사용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감사헌금으로는 매년 적자 운영이었으니까.그러나 우리교회가 광덕에 있기에 이것도 우리에게 주신 사명으로 생각하고 강행했다. 그 후 교회 부지 안에 우리교회 성전도 건축하기 전에 경안노회 70주년 기념사업 수련 회관으로 숙소 8칸 60평과 식당 주방 30평 화장실 샤워실 20평을 건축하여 강의 및 예배는 우리예배당을 이용하여 수련회를 하게 되니 여름철이면 자체 수련회관과 노회 수련관 양측에서 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11. 새성전 건축
그 후 광덕교회는 꾸준한 성장과  영적 성숙을 위하여 힘써오던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도들의 성전 건축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귀한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꿈이 되고 그 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주신 것이다.
  • 1999.10.18.
    별빛건축(이용우소장)설계의뢰
  • 2000. 6.22.
    설계도 완성
  • 2000. 8.26.
    시공업체선정 공사계약 (신안건설 손승동 사장)
  • 2000. 9. 6.
     기공예배
  • 2001.10.26.
    새성전 봉헌얘배  
  • 연  면 적 : 
    322,80m2 (97,65평)
  • 구      조 : 
    철근 콘크리트
  • 지      붕 : 
    철근콘크리트 스라브
  • 외      벽 : 
    벽돌 + 유리블럭
  • 좌  석 수 : 
    기본 192석, 확장  296석
  • 총공사비 : 
    2억 5천만원
  • 상      징 : 
    평면도-물고기 형상, 멀리서 보면- 강변의 방주 12기둥-12사도, 10기도실 투명돔-10계명
  • 특      징 : 
    야외 강단이 있어서 잔디밭 야외에서 예배나 기타 행사를 하기에 적합하고, 유리블록은 아름답고 자연채광이 되며, 분합문은 지역적 특성을 살렸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함. 점토벽돌은 자연과의 친화를 살리며, 강단에 큰십자가와 제단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 가면 성찬상이나 강대상이 막힘이 없이 바로 보이게 하여 하나님과의 직접 교통을 상징함.교회 대지는 2000평에 아름다운 조경으로 조화를 이루고 공간 이용이 자유롭고, 교회에 인접한 2000평의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 도로옆 넓은 공간은 주차가 자유롭고  교회앞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백사장은 아름답고 귀중한 자산이다.
12. 새롭게 신축한 성전의 모습 둘러보기
광덕교회를 설계 감리한 별빛건축 이용우 소장님의(http://www.starlight.co.kr/arch)홈페이지에서 게재된 사진들임을 밝혀드립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